극묘한 내면의 매혹적 연필화 세계

미술 창작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작가의 표현수법에 빚어져 있는 특질적 요소와 그 세계의 내면적 깊이이다.  그것은 감상자와 이해자의 감동 또는 각별한 미적(美的) 충족을 낳게 하는 구체적인 본질이다.  따라서 차원 높은 미술작품의 정신적 찬미자나 참된 애호가는 작가마다 각기 다른 수법과 형식의 표현형태 및 그 내면적 특성의 다양한 조형미에 따라 그들의 교양적인 감수성과 감상의 기쁨을 깊이 맛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작가의 다른 독특한 개별적 창작성의 가치야말로 무엇보다도 존중과 평가의 본질적 대상인 것이다.

전에도 여러 기회에 썼지만, 화가활동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연필그림만을 고수하여 그 세계로 자신의 독자적 회화경지를 뚜렷하게 실현시킨 원석연(元錫淵)의 존재는 국내에서는 물론 외국에서도 유례가 없을 완전히 이색적인 예술가상이다.  올해로 7순 노경(老境)에 접어든 그의 놀라운 세밀묘사와 명상적 혹은 시적(詩的)인 시각의 연필화 투쟁은 근 반세기의 연조로 일관된 세계이다.  그 끈기와 집념 및 한시도 흔들림이 없었던 외곬의 연필화가 자세는 실로 경탄스러울 따름이다.

원석연(元錫淵)의 연필화 전념은 해방 직후에 황해도 신천(信川)에서 월남하여 서울에서 고난의 화가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이루어졌다.  그것은 유화재료의 경제적 부담 때문에서가 아니라, 그가 적절히 선택하여 예리하게 깎은 연필로 그의 기질을 만족시킨 치밀한 묘사의 화면을 창출하는 데 스스로 충족을 받고, 그로써 자신의 예술 의지를 남다르게 관철할 수 있다는 결심과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한 결심과 자부심 자체가 이미 비범하고 특출한 것이었다.

동양의 전통적인 묵화가 먹물의 단색화면서 감상자에게 체험적인 자연색상의 심의(心意) 작용을 수반케 하는 데에서 '묵오채(墨五彩)'란 말이 있듯이, 원석연(元錫淵)은 '연필화도 느끼기에 따라서는 자연적인 색감이 내재돼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가 수십년 지속한 대표적 소재인 경이로운 세밀기법의 개미그림이나 마늘타래 또는 굴비묶음 등의 연필작업은 그 표상과 질감에 따라 현실적 색상감이 저절로 느껴지는 효과를 조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원석연(元錫淵)의 그 탁월하고 독보적인 연필화 세계는 6.25전쟁 직전인 1950년 3월에 서울에서 여러번째로 가진 연필화개인전 때에 배운성(裵雲成)같은 국제적 미술활동 경력의 화가가 신문에 쓴 평문에서, '모티브를 선택하는 솜씨와 선의 힘과 광음(光陰)의 조화가 소묘가로서 벌써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격찬했을만큼 20대 청년화가 시기에 이미 뚜렷하게 성립되고 있었다.  그 뒤로도 그의 매혹적인 연필화 작업은 많은 평자에 의해 감탄과 찬미의 내면으로 거듭 이채로운 평가를 받았다.

반면, 그는 유달리 강한 자부심과 자기중심의 기질로 어떤 미술단체나 그룹 참가의 철저한 외면은 물론, 대다수 미술가들이 사회적 효용성 계산으로 적극 참가하려고 들었던 국전(國展) 같은 전람회에도 일절 무관심함으로써 고립에 가까운 처지를 스스로 취하였다.  그러한 측면 역시 원석연(元錫淵)의 특이한 독존적 예술가로서 성격적 태도였다.

그가 연필화로 끊임없이 소재삼고 주제삼은 대상은 그의 서민적인 생활환경 속의 마늘타래와 굴비, 명태, 꽁치 혹은 양미리 등의 묶음이 보여주는 일상적 삶과의 관계형태 외에, 호젓하고 적막한 시골풍정의 농가, 원두막, 고목, 냇물, 까치집, 새둥지 등, 향토적 정서와 자연의 본색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몇백마리 이상까지도 생태적으로 극묘하게 그리기도 한 개미는 원석연(元錫淵)의 가장 대표적인 소재이다.

청담갤러리에 초대 전시되는 연필화 작품도 개미소재의 대작으로부터 앞에 열거한 원석연(元錫淵)의 전형적인 소재가 고루 담겨진 크고 작은 화면들이다.  그화면들에서 보는 극사실적인 연필 구사의 묘사적 완벽성과 서정적 강조, 그밖의 구도상의 매혹적인 압축 혹은 대담한 부분적 생략에 따른 여백 공간의 파격적 묘미 등은 이 작가의 7순 노령이 전혀 믿어지지 않는 빈틈 없는 건강성으로 출일돼 잇다.  그의 체력과 정신 및 표현감정 자체가 그렇게 아주 젊은 상태인 것이다.

그러면서 그 화면의 섬세하고 정감 짙은 솔방울이 매달린 솔가지 하나, 귀여운 새둥지가 붙은 잡목까지, 까치집이 향토적 정취를 자아내고 있는 높다란 잡목 풍경의 묘사 등에 농밀하게 집중돼 있다.  물론 그러한 관조(觀照)와 시적인 심사(心思)의 표현은 쓸쓸한 시골풍경의 농가, 초가집, 원두막, 냇가 등의 소재에서도 여실히 형상돼 있다.  그의 화면의 나무들은 거의가 겨울철의 나목(裸木)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심정적 정서감을 풍부하게 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李龜烈(미술평론가)